샬롬~♡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1:6‑8) '내 증인이 되리라'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단락별로 보면 모임에 관한 언급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6절: 그들이 모였을 때에, 13‑14절: 다 거기 있어 더불어, 15절: 모인 무리의 수가, 2장1절: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모였다는 언급이 많습니다.
‑>복음서의 연속선상에서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놀라운 일입니다.
‑>모두 도망가 버렸던 자들,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던 자들,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놀라운 일입니다.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님이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은 계속 일하실 것이다, 살아계셔서 제자들을 위해 또 믿는 자들을 위해 세상 끝날까지 일하실 것이라는 강조가 담겨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복음서의 연장선상에서 사도행전의 내용을 이어가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성령이 임하시는 시점입니다.
‑>현재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과 구원받은 성도들의 변화를 위하여 성령으로 역사하시기 전입니다.
‑>사도행전 1장 초반부에서 오래 머물러 있는 이유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있어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시작되어 예수님이 승천 직전의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제자들이 지금 모여 있게 된 것을 기억하면서 사도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을 중심으로 본문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질문입니다.
‑>(사도행전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앞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승천 직전까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묻습니다.
‑>이 괴리를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을 때에 가시적, 상황적으로 변한 것은 없습니다.
‑>도망했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기대하면서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알아서들 모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대 사회를 사로잡고 있던 종교 체계도 무너지지 않았고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 제국이 멸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삼년씩이나 따라다니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사도들이 여전히 구원받기 이전의 인식 체계와 사고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바라고 예수를 쫓았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마가복음10:37)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구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한 어떤 요청이 아니라 주의 나라, 예수가 지배하는 나라 이스라엘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번역본에 따라 제자들이 직접 요구했다 또는 그의 어머니가 와서 요구했다고 기록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 요청을 했을 때 다른 제자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마가복음10:41) 세속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느냐고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열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 기록합니다.
‑>모두 동일한 생각과 계획을 품고 있었는데 선수를 빼앗긴 것이 너무나도 분해서 화를 냈던 것입니다.
‑>모두 똑같은 생각과 인식 체계, 사고 방식으로 예수를 쫓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오늘 본문의 시점에서 다시 모여 있음은 이들의 어떤 수고와 깨달음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들을 모아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 있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묻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꿈꾸었던 주의 나라는 예수님이 일관되게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였을 뿐입니다.
‑>자기들의 나라, 자기들이 왕 노릇하는 나라, 자기들이 주인 된 나라, 자기들이 누구에게 꿀리지 않는 나라, 자기들이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 사는 나라, 자기들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하면서 살 수 있는 나라, 주를 앞세워 자기들이 왕노릇하는 나라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의 입장을 대변해 본다면 자기들의 도전과 헌신으로 사회를 개혁해서 행복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겠다는 이상을 품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그들이 머물러 있는 죄의 기준과 가치를 예수님이 알고 계셨기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무것도 하지 말라' 당부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우리가 바꾸어야 할 세상, 우리의 어떤 노력, 수고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로부터 구원받은 상태, 즉 전에는 죄에 속하였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상태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우리가 알고 깨닫고 이해하고 적용하여 누리고 구현해 가야 하는 복음, 결과에 관한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나 부활하신 후에나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는데 사도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묻고 있다는 것이 엄청난 괴리입니다.
‑>사도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물었듯이 중세에는 거룩한 도시를 앞세웠으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암흑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노력했던 결과는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이라 할지라도 최악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십자군 전쟁 또한 기독교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성시화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시화운동은 전교회(The Whole Church)가 전복음(The Whole Gospel)을 전시민( The Whole City)을 전하는 3전운동 한마디로 전복음운동이다)
‑>이름이 좋다고, 거룩한 표현이라고 모두 기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바꾸신 것이 아니라 죄인의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예언했듯이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십자가 사역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처음 물으신 것이 '평안하냐' 마음의 상태를 질문하셨던 것입니다.
‑>아직 제자들은 평안을 누리지 않지만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신 것은 마음의 변화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새 영과 새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하여 죄를 이기는 삶입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깨우치시고 가르쳐 내실 것이기에 성령께 배우고 깨우칠 때까지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사도행전1:7‑8)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세 가지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는 때를 묻는 사도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니 너희 알 바 아니다 말씀하시는 것은 사도들을 무시하시거나 윽박지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과 세상의 흥망성쇠에 관한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 너희에게 결코 짐 지우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과 정반대의 선언을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실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 온 하나님 나라에 이제 성령이 오셔서 너희에게 실현시켜주실 것이다, 떠나지 말고 너희 생각대로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라의 선언입니다.
‑>(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겠다는 선언이자 선포, 약속이자 맹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포와 약속의 말씀들을 우리가 이루어내야 하는 것처럼 듣고 있기에 엉뚱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내가 어떻게 해보겠다는 각오나 결단이 아니라 '네' 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네'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배웁니다.
‑>모두 자기들의 생각, 논리, 경험한 바가 있기에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결과를 받는 대상, 하나님 나라의 열매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일하셔서 사도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고 그 변화됨을 하나님이 어떻게 땅끝까지 전파해 가는지를 보여주시는 놀라운 성경입니다.
‑>사람이 할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입니다.
‑>사도들이 임하시지 않는 성령을 임하게 할 수 없고 임하시는 성령을 임하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할 말이 없고 할 일도 없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사도의 무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그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 약속의 결과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너희가 권능을 받고' 입니다.
‑>권능도 너희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6:21)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말씀대로 권능의 결과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 입니다.
‑>셋째, '내 증인이 되리라'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되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흐름을 부담감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말은 우리가 사영리를 외우고 전도법을 배워서 스스로 온갖 부끄러움과 모욕을 무릅쓰고 나가서 무언가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저절로 증인이 되어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증인 되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거나 증인 되어 가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죄를 이겨서 평안을 누리는 삶, 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땅끝까지 이르러 그 복된 삶을 온 세상이 알도록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로 전도해도 결국 부딪히는 것은 삶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복음에 머물러 계시므로, 아멘하므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시면서 그것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때 내 삶의 변화가 열매로 주어진다는 것을 경험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고 실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시면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권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누리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만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가족, 이웃, 동료에게 보여주시고 나누어 주고 전하여 주면 됩니다.
‑>내가 못 따라가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그 일을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고 성령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사도행전을 함께 상고해 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말미암는 변화를 사도들의 삶 속에서도 확인해 보시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간증해 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