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누가복음 22:54‑23:1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라' 제목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너희 때'가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누가복음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이 때'는 불법자,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동류로 여김을 받으시는 때,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서 그들이 당해야 할 죄의 결과를 대신 받으시는 때입니다.
‑>예수에 관한 일,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예수께서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죄인들에게 고난과 죽임을 당하셔야 하는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기꺼이 자기 영혼을 사망에 이르도록 버리시는 것입니다.
‑>잡히시는 모습이지만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담당하여 그 값을 대신 치르셔야만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희 때' 곧 어둠의 권세에 사로잡힌 죄인들의 때에 그들로부터 불법자와 범죄자로 여김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연속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신 이후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22: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베드로가 멀찍이라도 예수에게 따라붙는 이유는 예수를 향한 의리나 충정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뒤쫓는 모습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증언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붙었던 이유는 예수의 결말, 예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해서 자기 계획의 성패를 판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끝까지 예수를 뒤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예수의 도당이라고 지목을 받았을 때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입니다.
‑>(누가복음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장면을 예수님의 쓸쓸한 눈빛과 베드로의 참회의 눈물로 드라마틱하게 상상하지만 전혀 그런 장면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신 것은 당연히 그럴 줄 아셨기 때문이며 베드로가 심히 통곡한 것은 자신이 그럴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예수님 앞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서 있었으며 예수님은 끝까지 할 수 없다, 너희가 갈 수 없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분하고 억울함이 심히 통곡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의 모습 이후에 예수님을 잡아다 놓고 신문하기 전에 지키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누가복음22:63‑65)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리고 많은 말로 욕을 합니다.
‑>단지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자,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나 자기를 위해서 주인 혹은 상관에게 인정받을 만한 행동이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역사 가운데 군인들이 보여왔었던 행태, 오늘날에도 민주적이지 못한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쿠데타 상황가운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군인들이 하는 행동들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들에 이어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누가복음22:66‑23: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자기 민족인 유대인 예수를 신문해서 그들이 혐오하는 이방인 빌라도에게 고발합니다.
‑>(누가복음23:2)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라고 가짜 뉴스로 거짓 증언을 합니다.
‑>모두 자기들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그리스도가 왔는지, 세례 요한에게 권위가 있는지 관심이 없으며 자기들의 권위, 안위,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만 유일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더 활개를 치기 전에 날개를 꺾어 죽이지 않으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됩니다.
‑>왕 그룹에 있는 엘리트 그룹, 권세자들입니다.
‑>(누가복음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이 상황이 대화 그대로라면 더이상 물을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아서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유대인의 왕이기에 예수님의 대답은 반역입니다.
‑>이에 대한 빌라도의 판단입니다.
‑>(누가복음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예수님의 대답과 여러 가지 정황을 보니 예수에게서 반역의 혐의점도 찾아볼 수 없고 예수의 모습이 반역자 감도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죄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빌라도 역시 자기를 위하여 하는 행동인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로마 황제의 권한을 위임받은 자, 유대 지역에서는 왕을 넘어 황제인 그가 자기의 판단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자기 아래 갈릴리를 관할하는 헤롯에게 예수를 보내어 신문하게 합니다.
‑>(누가복음23:8) 헤롯은 이적을 보고 싶었기에 평소에 예수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이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이적을 행하는 것 자체가 그 지역만 다스리는 헤롯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기에 보고 판단한 후에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어주신 때이기에 이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했지만 예수가 아무 말로도 대답하지 않자 없신 여기고 희롱하다가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예수님이 처한 상황에서 빛난 옷을 입힌다는 것은 완전히 짓밟았다는 의미입니다.
‑>헤롯도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있어 돌려보내도 괜찮다는 판단을 하여 빌라도에게 다시 보냅니다.
‑>권세자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정치적인 이유, 서로의 덕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편하고자 혐의점 없고 반역죄가 전혀 성립될 수 없는 예수님을 반역죄로 몰아가서 극형에 처하게 됩니다.
‑>서로 친구가 되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기꺼이 자행하는 이들도 모두 자기를 위하여 한 것입니다.
‑>단지 정치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은 민란과 살인의 죄목으로 옥에 갇힌 바라바를 예수와 맞바꾸기로 결정한 행동에서도 드러납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죄인들의 심리를 파헤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은 우리 또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자기가 주인 된 죄의 기준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이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호산나를 외쳤던 무리가 '살인자, 진짜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과 맞바꿔 주겠느냐'는 질문에 '그 사람을 우리에게 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합니다.
‑>모두가 자기를 위한 행동, 죄의 원리로만 행하는 것입니다.
‑>죄의 원리로만 행하는 결과, 자기만 위하여 살아가는 삶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인들의 손에 이끌려 사망에 이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물을 때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답하시며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을 때 '네 말이 옳도다' 답하시고 헤롯이 여러 말로 물을 때는 아무 말로도 답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을 작정하신 것이며 예수님 자신이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으셔야만 불법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을 기념하는 주간에 불법자로 행한 나의 죄인 됨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깊이 깨닫고 경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이때에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을 보며 구원받을 사람, 구원 안 될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 될 사람이며 모두가 자기만 위해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바르게 바라볼 때,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예수님,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나와 같은 자로 여김을 받으신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위대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깊이 만나고 경험하게 되는 복된 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베드로만 예수님이 긍휼의 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모든 죄인을 이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셨기에 저들의 죄를 저들이 알지 못한다고 끝까지 그들의 죄를 대신 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가능했음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