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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3.14 새벽말씀

권화영2024.03.14 09:4003.14조회 수 1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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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11:1‑11)입니다.

 

‑>앞선 (마가복음10:32‑41) 예수님이 자신이 당하실 일, 자기의 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세 번째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이 끝나자마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서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요구했으며, 다른 제자들은 화를 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죄인의 간극을 알 수 있는 단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것 외에는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원할 방법이 없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0:46‑52) 맹인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결코 스스로 눈을 뜰 수없는 맹인이 예수님의 은혜로 눈을 뜨게 되었다, 마치 죄인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과 같음을 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1장은 그동안 예수님이 직간접적으로 예고하시고 미리 말씀하셨던 대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앞선 마가복음10장은 예수님 공생애의 시작부터 3년여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 반면에 마가복음11-16장까지 6장의 분량은 마지막 일주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총 28장 중에 21‑ 28장까지, 누가복음 총 24장 중에 19‑24장까지, 요한복음 총 21장 중에 12‑21장까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까지의 마지막 주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저자 모두가 같은 지점, 같은 방향인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의 본질인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말씀이 결국 십자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깨달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 죄에 사로잡혔던 죄인이 죄로부터 구원받아 성도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확증하고자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일반 백성, 바리새인, 서기관, 3년 내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그리스도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따랐지만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 왜 오셨고 무슨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행하셨고 반복해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이루실 구원의 역사와 죄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죄의 문제로부터 오직 은혜로 구원하실 것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들이 직면한 여러가지 삶의 문제를 해결받는것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제자들에게는 더욱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사역을 감당하실 것인지 그 사역의 결과는 무엇인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세 번이나 설명했지만 세 번째 말씀이 끝나자마자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싸웠으며, 예루살렘 입성 직전까지도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 싸우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예수님이 오셨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그러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것이 죄인들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그 누구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은 것, 영접하지못한 것은 모든 사람이 죄에 사로잡혀 있었고 죄의 종이 되어버렸기에 세상을 지으시고 자기를 지으신 참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죄인들의 상태입니다. 

‑>이러한 죄인을 부르러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것을 친히 보여주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죄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기에 죄에 사로잡혀 있는 죄인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죄를 완전히 멸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매우 독특합니다.

‑>(마가복음11:1‑2)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예수님은 두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내셔서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오게 합니다.

‑>(마가복음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키가 작은 나귀는 사람이 타기보다 보통 짐을 나르거나 농사를 지을 때 노동 수단으로 사용되는 짐승이며, 그중에서도 나귀의 어린 새끼를 가져오게 하시고 타십니다.

‑>성인 남자가 나귀 새끼를 타는 모습, 예수님이 나귀도 아닌 나귀 새끼를 타시는 모습은 참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지만 예수님은 예언을 따라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스가리야 9:9) '시온에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에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언을 따라 나귀새끼를 타시고 하나님의 예언을 따라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시는 모습 속에 담겨 있는 의도는 예언대로 오셨고, 예언대로 사셨고, 예언대로 사역하셨고 그러므로 앞으로도 예언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싼 그 누구도 예언을 기억하지 못하고, 예언을 따라서 예수님이 이루실 일을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예수님은 기꺼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예수님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명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마가복음 1장 1절의 선언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 진행하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구원의 역사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예언대로 행하시는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의 본질이 나귀 새끼를 타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뜻은 하나님이시기에 기꺼이 나귀를 타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능욕을 당하시고 하나님이시기에 침뱉음을 당하시고 하나님이시기에 채찍질을 당하시고 하나님이시기에 죽임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죄인 되었던 우리를 성도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온전히 성취되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기꺼이 나귀를 타시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우리를 위하여 감당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11:8‑10)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과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소리를 지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볼품 없는 나귀 새끼를 탄 청년의 모습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모습도 아니고 다윗의 자손의 모습도 아니었으며, 가장 높은 곳이 아닌 나귀 새끼를 타서 두 발이 땅에 닿는 지경이고 그들이 고대하던 위풍당당한 메시아의 풍채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호산나 찬송하리로다'를 거듭 외치고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외치는 무리의 모습속에서그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써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그 모든 결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며칠 후에 호산나를 외치던 그들의 외침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외침으로 한순간에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나귀를 타시는 예수님과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묵상하며,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결국 우리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외치고 가장 앞서서 십자가에 못 박았을 우리를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간격이 메워질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질 수 없는 간극이 오직 십자가 복음의 은혜로 메워졌다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여전히 엉뚱한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 우리의 옛 자아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회개하므로 진정한 복음의 의미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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