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 9:2‑13)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볼 때 높은 산, 데리고 가셨던 사람들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기에 어마어마한 광경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9:4) '이에 엘모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도 모세와 엘리야 정도면 하나님의 아들과 더불어 말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부르던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아 앞에서는 호칭을 바꾸어 스승이라는 뜻의 랍비라고 예수님을 부릅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신비하고 위대한 경험에 도취되었거나 이토록 경이로운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기에 초막 셋을 짓겠다고 나섰을 수도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라고 여겨지던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자기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였을거라 여겨집니다.
‑>베드로는 갑자기 초막 셋을 짓겠다고 나서지만 지금껏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짓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 이 일은 결국 모세와 엘리야를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적이 없는 일을 인간이 갑자기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100% 엉뚱한 짓을 할 때이거나 하나님의 뜻과 반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중요하고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하신 적이 없고 예수님이 시키신 적이 없는 엉뚱하고 헛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나선 이유입니다.
‑>(마가복음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함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그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모두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몹시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나 행동을 본능이라고 합니다.
‑>신적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기가 한몫해야 한다는 생각, 이스라엘의 영웅들과 함께하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순간을 자기 힘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행동은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본능으로 살아가는 모든 죄인의 사고 방식이며 행동 양식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겠다'는 베드로의 말은 자기 스스로 명예를 얻고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죄인의 본능적인 자존심에 따른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이 복을 받고, 저렇게 하면 저 복을 받는다고 여러 행위를 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는 장면,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자들을 만나서 대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지위와 권세를 드러내시기 위함이거나 모세와 엘리야의 역할을 통틀어 감당하실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모든 것은 모세와 엘리야가 대단하고 훌륭한 위인들이라는 전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모세와 엘리야의 인생을 들여다봐도 결론은 하나님이 찾아오시지 않고 이들을 통해 일하시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인 것입니다.
‑>살인자의 도망자 신세였던 모세를 부르셔서 그를 세우신 것, 10가지 재앙으로 출애굽 시키신 것,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 홍해를 가르신 것, 광야에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신 것,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신 것 모두 모세가 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무명의 엘리야를 부르셔서 세우신 것, 가뭄을 예견하게 하신 것, 도망 중에 돌보신 것,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불로서 이기게 하신 것, 가뭄을 그치게 하신 것, 이세벨의 추격으로 스스로 죽기를 구할 때 아합 왕조의 멸망을 예언하신 것, 계속 그 길을 가게 하신 것, 바알을 대적하는 칠천 명을 남기신 것, 이 모든 것을 엘리야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했던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하시는 현장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하는 이유는 구약의 두 사람이 예수님이 행하실 사역의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특별하기에 두 사람이 선별되어서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들인 것입니다.
‑>대표자들은 모세와 엘리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통하여 일하신 모든 인물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처한 여러 문제적 상황을 해결해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앞선 마가복음 8장에서 마치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해결해 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사역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한 일들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병 낫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 귀신 쫓아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고쳐주고 살려주고 먹여주고 먹고 살만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기에 우리를 죄로부터 건지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고 곤고하게 만드는 죄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이 사실을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의 400년 종살이로부터 건지셔서 출애굽 시키셨으며 엘리야를 통해서 오랜 가뭄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으로부터 건져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으나 인간의 삶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죄인이었기에 비참한 삶의 지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하나님을 아는 우리, 하나님이 무엇을 문제로 여기시는지를 아는 우리는 그 문제의 원인이 온통 죄의 원리, 기준, 가치로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종살이에서 벗어나고 가뭄이 끝이 나도 비참한 삶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일선에서 체감했던 자들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문제가 해결 되어도 여전히 삶은 비참하다, 불행하다, 고통스럽다, 괴롭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음을 일선에서 체험하고 경험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영웅으로 추정하는 그들도 이스라엘의 문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사역의 증인들이며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아는 자들입니다.
‑>(마가복음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아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누가복음에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9: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이 죄에 사로잡힌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셔야만 사람이 모든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어 주셔야만 사람이 비참한 삶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되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왜 나타났는지, 예수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제자들은 보고 들어도 무슨 말인지를 이해할 수 없으며 이 사실을 죄인만 모르고 초막 셋을 짓겠다는 아무런 쓸데없는 일을 제안할 뿐입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마가복음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도대체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죄인의 무지와 한계가 그들의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엘리야에 관하여 묻습니다.
‑>(마가복음9:11) 구약의 예언대로 그리스도 메시아에 앞서 엘리야가 와야 한다는 유대인들의 믿음에 관하여 묻는 것입니다.
‑>여전히 엘리야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9:12‑13)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을 일컬어 말씀하시는 것이며 너희가 그렇게 고대하던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함부로 대우했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곧 죄인에게 더이상의 기대와 방법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멸시를 당하시고 죽으시는 것으로만 죄인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죄인들이기에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문제를 모르는 자에게 문제의 해결책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산 사건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마가복음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들으라'는 말씀은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순종하고 복종할 수 없는 죄인들인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알라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그 일을 이룰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듣고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원의 일, 복된 소식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이 자리에서 듣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을 때, 하나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고백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이루어진 열매들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알아듣지 못한 복음의 의미를 알고 모세, 엘리야, 세례 요한이 이루어내지 못한 복음의 결과를 아는 자들이 우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의 열매로 죄로부터 구원받았고, 이제는 죄가 아닌 하나님께 속한 성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세상의 한복판에 세우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오늘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복음의 일을 듣고 알고 이해하여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존재에 합당한 삶을 누리라, 하나님의 자녀, 성도답게 행복하게 살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동일한 음성을 들려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들으실 수 있기를 바라고 복음을 복음답게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음, 영광스럽고 확고한 부르심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