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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3.5 새벽말씀

권화영2024.03.05 09:5003.05조회 수 1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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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9:2-13)입니다.

 

‑>마가복음은 8장에서 예수님이 처음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기에 8장을 기점으로 9장부터 내용의 전개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마가복음 9장부터는 8장까지 주된 내용이었던 예수님의 치유, 축귀, 구제하시는 사역의 비중이 줄어들고 십자가 사건을 향해서 나아가는 흐름으로 내용이 전환됩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감당하실 십자가 사역의 의미와 그 결과로 변화될 성도가 존재적으로 취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8장 이후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 대화와 사건을 바라볼 때 반드시 십자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고려하지 않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현상이나 인과관계, 경험적인 원리들을 가지고 본문을 보게 되면 말씀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또한 죄의 원리로 살며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원리인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이 그리스도의 사명이기에 마가복음 14‑16장까지 예수님이 잡히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십자가가 중심이 된 사건을 결론적으로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십자가의 사명을 이루시고 부활하셨기에 오늘 우리가 성도가 되어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는 고백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흔히 말하는 변화산 사건입니다.

‑>(마가복음9:2‑3)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 말씀은 세 사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그들 앞에서 광채가 나도록 희게 변형되셨다는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이라는 표현은 무슨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현상과 장소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산에서 변화되셨기에 변화산 사건입니다.

 

‑>성경을 보는 우리의 관심이 어떤 현상, 장소, 사람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성경에 나오는 현상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신앙적인 경험이 되고 현상이 일어난 장소는 꼭 가봐야 할 거룩하고 영엄한 성지가 되며 현상을 경험한 인물은 동일한 경험을 위해서 본받아야 할 위인이 됩니다.

‑>매우 종교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나 전혀 성경의 초점이 아니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가복음9: 2) '높은 산'이 어디인지 궁금해합니다.

‑>예수님이 올라가셔서 예수님이 광채가 나도록 희게 변화된 산이라면 어떤 산일까요?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어느 산인지가 중요했으면 산을 정확하게 기록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할 만한 장소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한 세명의 제자에게도 관심을 갖습니다.

‑>제자는 12명인데 단 세명만이 9명이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이 등장하며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세 사람만을 데리고 다니시므로 무언가 특별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전후 맥락 상관없이 사람에 대해서 자꾸만 관심을 가지고 거기서 근거를 찾고자 합니다.

‑>우리가 만약 세 사람에 들지 못한 제자라면 어떨까요?

->'왜 이들에게만 특별한 경험을 허락하셨을까, 왜 하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일까' 궁금해 합니다.

‑>정답은 '그냥'입니다. 

‑>처음부터 12제자가 특별한 자들이 아니며 뽑으신 것이 아니라 아무나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중에 아무개 셋을 데리고 다니신다고 해서 나머지 아홉명 보다 더 특별하고 탁월한 제자로 인정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 자체가 성경을 볼 때 자꾸만 다른 곳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거룩한 사도들 가운데 특급 사도가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죄인들 가운데서 부르셨을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별칭을 붙여주신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먼저 부르신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세상에 그대로 두었으면 제풀에 못 이겨 자지러지거나 고꾸라졌을 존재이며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 중의 괴수이기에 어디를 가시든 데리고 다녔을 것입니다.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어떤 선택의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마가복음10:37) 두 제자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와서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는 선생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라고 부정 청탁을 합니다.

‑>마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영광스러운 기도의 현장에서 했던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볼 수 없을 만한 높은 산 어딘가에서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아마 죄인들끼리도 서로 받아주기를 꺼렸을 돌쇠(게바)와 천둥의 자식들 앞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이 흐름 안에서 오늘 본문의 나머지 내용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광경, 그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취하는 반응, 바로 그때 하늘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산에서 내려오는 가운데 예수님과 세 제자가 나누는 대화를 십자가의 렌즈를 끼고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시면 오늘 성도된 우리에게 전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이 간결하고 분명하게 들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듣는 은혜가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 삶의 자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틀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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