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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4-2.14 새벽말씀

권화영2024.02.14 10:3802.14조회 수 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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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 (마가복음2:1-17)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하기를 원합니다.

 

->마가복음 2장은 한 중풍병자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마가복음2:3-5)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우리는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라는 말씀 때문에 중풍병자가 치유받은 근거를 믿음에서 찾습니다.

->또한 네 사람이 중풍병자의 친구인지 확실하지 않는데도 그 사람들을 믿음의 친구들로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우리가 감동받는 부분이 인간의 행동인 측면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이 막혀 있으면 지붕을 뜯자, 지붕을 뜯는 믿음을 소유하자'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위대한 선언으로 시작된 마가복음의 교훈일까요?

->믿음이 치유의 근거라면 치유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또한 믿음이 치유의 근거라면 믿음의 주체는 누구이어야 할까요?

->병에 걸린 당사자 또는 본인이 아닌 주변 사람들, 적어도 둘 중 한편만 믿음이 있으면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마가복음 1장에서 더러운 귀신들린 자와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에게서는 어디에서 믿음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너무나 당연한 듯 자리잡아왔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모순투성인 사고방식과 개념들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반드시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고 방식과 개념들이 스스로를 자책하여 종교의 굴레안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연약한 이들을 정죄하여 짓밟기도 하며, 우리의 행동과 삶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일하신다는 것임을 꼭 기억하시면서 마가복음을 읽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서 일하신다'는 의미는 인간의 모습, 세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고방식, 개념, 원리, 가치, 기준과는 다른 철저하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강림하신 이유는 죄인들의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죄인들이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구원의 방법이 스스로에게는 전혀없다는 것이 역사 가운데 증명되어 죄인들의 때가 찬 줄로 알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죄인들의 상태는 스스로 어떤 행위의 가능성, 마음의 자각, 깨달음을 보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고 나올 수 있는 영적상태가 아님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치 죄인들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열병에 걸려 누워있는 여자, 거라사 광인의 상태입니다.

->또한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를 통해서 스스로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죄인들의 상태임을 가르쳐주기 위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죄인들을 상대로 예수님이 믿음의 유무, 믿음의 분량을 따지면서 치유의 여부를 결정하신다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병들고 귀신 들린 자들을 대하십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행하실 수 있는 '은혜의 원리'를 복음서를 통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호의입니다.

->무언가의 조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격과 조건을 갖출 수 없는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자격과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배푸는 호의이며, 혜택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를 계시하는 통로임을 염두하시면서 말씀을 묵상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중풍병자를 메워 들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바는 중풍병자 본인의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마가복음2:5)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에서 '그들은' 한 중풍병자를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중풍병자를 낫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칭찬할 만한 믿음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며,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나 가족에게 질병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해보았거나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분, 위기와 고통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본 사람 가운데 믿음을 붙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을 앞세운 마가복음은 그들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 초점을 맞출 것을 독려합니다.

 

->만약 중풍병자의 이야기 속에서 침상을 메고 와서 지붕을 뜯어서 달아 내린 믿음을 강조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마가복음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보셨다는 믿음과 선언하시는 내용이 매칭되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어라의 수준이었습니다.

->(마가복음2:6) '네 죄 사함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얘기를 듣고 어떤 서기관들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아시고 질문하십니다.

->(마가복음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실까요?

->예수님의 질문대로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의 말과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울까요?

 

->죄사함을 언급하신 이유입니다.

->중풍병자는 죄 사함에 대한 생각, 기대, 소망이 없었으며,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죄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중풍병자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을 듣고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하며, 그 이유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상태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것을 모르고 죄가 죄인줄을 모르며, 스스로 주인되어 파멸과 고생을 결정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병자, 수많은 귀신 들린 자들처럼 자기의 상태를 인지, 인식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죄인임을 알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붕을 뜯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생각하는 문제 만 해결되면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수준에 있는 자들을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해야 할 복음의 내용은 죄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인간의 태도,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이땅에 오신 하나님입니다.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은 죄를 사함 받아야 할 죄인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 찾아가는 대상이 유대 사회속에서 죄인이라고 규정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찾으시는 대상입니다

->(마가복음2:13-15) 당시 죄인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세리 레위를 찾아가셔서 그를 제자로 삼으실뿐만 아니라 그 집에 모인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던 죄인들에게 예수님과 함께하는 식탁은 죄의 본질을 깨닫고 죄의 짐과 허물을 덜어낼 수 있는 축복의 자리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있는 바리세인의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면서 복음서의 모든 사건들을 깊이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사건속에서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오셔서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일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입니다.

->(마가복음2: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우리는 내 삶이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대로 잘 풀릴 것이다, 항상 건강하고 늘 풍요롭고 언제나 잘 될 것이다는 믿음을 붙들고 사는 자들이 아니며, 이것을 얼마나 강하고 굳세게 붙들고 있는지 그 의지와 열정의 정도가 믿음의 척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을 이렇게 오해하고 있으며,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성도된 우리는 내 모든 삶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과 그 분의 손길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계시된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 지식에 기반을 둔 삶의 모든 분량이 믿음의 척도이므로 기독교 신앙은 여유롭고 넉넉하며, 이 믿음의 분량이 채워져갈 때 여유롭고 넉넉한 믿음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복음서를 묵상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가면서 더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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