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신명기5:22-33)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신명기 5장 2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모세가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선언과 함께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다시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안다면 더 가감할 것 없는 완전한 십계명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음을 밝힌 후에 바로 이어서 이스라엘의 반응과 하나님의 반응을 소개합니다.
->(신명기5:23-27) 이스라엘의 반응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응은 하나님을 아는 반응이 아니라 모르는 반응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5:23) '산이 불에 타며 캄캄한'의 표현은 이스라엘 온 백성이 온몸으로 느꼈을 만한 분위기입니다.
->또한 이들이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지만 '신'이라고 바꿔서 읽어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신명기5:24-26) 이들은 신의 영광과 위엄이 아니고는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현상을 경험한 것입니다. (불 가운데서 말씀하심)
->큰 불이 그들을 삼킬 것이고 여호와의 음성을 다시 들으면 죽을 것이라며, 이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언급하지만 다른 신들과 다르지 않고 이방나라의 백성과 다를바 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의 음성을 들었고 신을 대면하여 보았으니 그 화와 저주가 자기들에게 미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 죄에 사로잡혔기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죄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죄의 원리, 왜곡된 시선으로 하나님을 보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이방나라의 백성이 인식하는 것과 같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힘으로 통치하고 상벌로 통제하는 애굽의 신, 그들이 직접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본 파라오(바로)와 같은 존재로 하나님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모든 죄인이 신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로 말미암은 신에 대한 인식때문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에 휩싸인 이스라엘이 보인 최종적인 반응입니다.
->(신명기5:27)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말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신명기5:28) '~그 말이 다 옳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응 중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라는 말에 대하여 '옳도다' 반응하십니다.
->이말 자체는 옳은 말입니다.
->(신명기5:29-33)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영원히 복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명령을 따르면 복을 주시고 따르지 않으면 저주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두면 저주를 받는 것이며, 죄의 결과가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결과를 누리는 복이 있기를 바라신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 말씀을 따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는 말이 하나님 편에서는 고대하던 말이었을 것이며, 옳은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이스라엘의 상태, 마음과 동기를 고려해보면 틀린 말입니다.
->틀린 말인 이유는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처음 받기까지 그들을 위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손길,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신 능력의 손길을 경험했음에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죄의 원리, 이방나라의 백성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사고방식, 가치체계로 하나님을 인식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라는 말은 무의미한 말이었습니다.
->이들은 십계명을 받고 이년만에 하나님이 주기로 맹세한 땅, 가나안 초입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러 정탐하고 돌아오자마자 그들이 내린 결정을 보면 무의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이스라엘의 말은 죄로 인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불 가운데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 시험과 기사와 이적, 전쟁과 강한 손과 편팔과 두려운 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최종목표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복을 누리게 하는 유일한 길었으나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방식이 그들에게 두려움으로써 움직이려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두려움을 주어 행동하게 하는 원리, 상과 복으로써 동기를 부여하고 저주와 화로써 행동을 통제하려는 원리는 전혀 기독교적이거나 하나님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시므로 그들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방식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방식입니다.
->(신명기4:35)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다르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게 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원리인 줄로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외에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동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바른 순서입니다.
->(시명기4:39-40) '그런즉 너는 오늘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알아 명심하고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는 이스라엘의 말이 참된 고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신명기5:28-29)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다만 이같은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말미암기를 바라셨습니다.
->'경외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 입니다.
->우리는 '경외하다'를 '두려워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경외하다'는 '사랑하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모두 지킬 수 있을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을 알아서 인격성에 기초한 신뢰관계가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두려움으로 비롯된 그 어떤 행동이 아니며,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리까지 나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신명기를 읽어가시면서 하나님이 자기백성과 맺기를 원하셨던 관계,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맺은 복음적 관계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고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