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신명기3:12-29) '그만해도 족하니'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신명기 1-3장 전반부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결정하므로 사실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가 한사람도 없었던 이스라엘의 방향을 돌리셔서 38년간 광야 한복판에서 살게하시는 하나님의 조치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광야 1세대의 심판조치가 아니라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 2년의 시간까지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이방의 신들과 다른 하나님을 알리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쳐 내시기 위한 계시와 교육의 조치였습니다.
->먹다 죽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 가운데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압축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신명기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말씀합니다.
*이 은혜가 한 해 동안 우리의 삶 가운데 있을 것이며, 연말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실 앞선 2년간도 동일하게 역사하셨지만 하나님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에 무려 38년간 복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큰 광야 한 복판에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두루 다니는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그 삶에 부족함이 없음을 교육하시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38년간을 함께하신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향하신 한가지 목적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평생에 걸쳐서 신실하게 일하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전하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기 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분량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순간에 내 소견에 옳은대로 죄인되었던 때의 마음과 원리로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나안 정탐 이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올라가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선호와 선택의 문제,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간섭, 침해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호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기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며, 불순종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한 것에 대하여 심판의 조치를 가하시므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일하신다면 그것은 강요와 겁박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은 절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당한 결과는 하나님의 벌주심이 아니라 복주심을 거부하므로 그들이 자초한 죄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꺼이 순종의 자리로 나아올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위한 계시와 교육의 사역을 감당해주신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고 말씀을 청종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기에 결국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은 신실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분량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을 온전히 알때까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시와 교육 사역의 결과로 하나님을 배웁니다.
->38년 전에 마치 벌 떼 같았던 아모리 족속에게 나아갈때에는 자신들을 멸하시려고 내모시는 것이라고 원망하면서 말씀 따르기를 거역한 자들이 38년이 지난 이후에 다시 나아가라 할때 어떠한 말도 하지않고 나아갑니다.
->(신명기2: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이제 이스라엘에게 신뢰할 만한 말씀이 된 것입니다.
->38년간의 신뢰가 있었으며, 하나님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셨고 광야에서 두루 다니는 동안 함께 하시는 은혜를 충분히 경험했기에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존재적으로 죄인된 한계가 구약 끝까지 나타나지만 중요한 것은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신것입니다.
->오래 참으심, 관용, 감당, 설명, 설득, 설복(항복하고 수긍할때까지 설득하심)으로 가능하게 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입니다.
->오직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사역, 죄인을 변화시키사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갈렙, 여호수아가 그들 자체로 훌륭했던 사람들이 절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으로 변화시켜 내신 것이며, 열매로써 소개하는 존재들입니다.
->이처럼 죄인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고 이미 성도로 거듭난 우리를 변화시킬 것을 믿습니다.
->우리를 더 아름답고 풍성하게 날마다 하나님을 더 닮아가는 존재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존재로 능히 우리를 변화시켜 가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운명이 결정된 자들이고 종말이 보장된 자들임을 믿으시기길 바라며, 이것은 성경의 약속입니다.
->에베소서 4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을 이루게 하실 것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종말입니다.
*이러한 약속, 표현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 종교적 수사, 늘상하는 이야기로 오고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올 한 해 동안 누려질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능히 그렇게 하실만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신명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신명기3:12) '그 때에(38년이 지난 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요단 동편 모압 땅)~'라고 단한마디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한문장으로 이스라엘의 광야 1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열매를 맺는 복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을 대표하는 모세가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르우벤자손, 갓 자손, 므낫세 반지파를 비롯해서 다음세대 백성들의 전체에게 전하는 권고, 명령의 말씀을 이스라엘이 지난 세월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3:18, 20)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이 말씀에서 '기업과 안식'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기업은 유업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주어서 받는 것, 받으라 하셨기에 얻게 된 땅입니다.
->기업의 의미는 요단 동편의 땅을 자기들이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 차지하게 하셔서 얻게 되었다는 것,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기업은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명확한 인식을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안식은 이스라엘이 좋은 땅을 얻게 되어 안식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좋은 땅은 안락은 줄지 몰라도 안식은 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환경적인 요소, 상황, 형편, 여러 여건과 조건들이 안락을 줄지언정 안식은 줄 수 없습니다.
->안식은 창세기 2장에서 창조하기를 다 마치셨을때 등장합니다.
->(창세기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이 때의 안식은 앞서 6일간 창조하심에 수고하셔서 쉼이 필요하시어 사용된 의미가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살게하사 그 모든 날을 복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와 분복을 누리면서 살게하는 안식의 날들이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날이 안식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동하면서 살지라도 노동 가운데 안식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을 알때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말씀을 따라 죄를 이길때 누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주인되어 살아서 결국은 죄의 결과, 사망의 결과를 맞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이 38년이 지난 때에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린 것은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 안식을 이스라엘이 경험했기에 광야 2세대를 향한 확신에 찬 선포가 모세의 입술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3:21-22)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 눈으로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말합니다.
->친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알고 인정, 고백하여 죄와 싸워서 이기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정한 안식을 누리게 되기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교육하셨기에 가능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세의 고백입니다.
->(신명기3: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추가적으로 구하면서 요청합니다.
->(신명기3: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하나님을 아는 모세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기업에서 하나님을 아는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요청에 냉정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신명기3: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라는 표현으로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와 광야 1세대의 처지가 여전히 심판의 결과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노하사'가 포인트가 아니라 '~족하니~'가 포인트입니다.
->모세와 광야 1세대가 이제 하나님을 알았기에 모세와 이스라엘을 사로잡은 죄에 대하여 진노하셨던 하나님이 가나안을 목전에 둔 지금 '그만하면 됐다, 그만해도 족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를 약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3: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이제는 너를 향한 나의 뜻을 알겠지, 그러면 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만하면 됐다, 그것이면 됐다' 말씀해주시는 은혜로운 음성이 선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심판의 관점이 아닌 계시와 교육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관점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기업은 무엇입니까?
->어렵게 장만한 집, 부동산이 아니라 '성도된 것'입니다.
->'성도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선물, 기업, 하나님 나라의 유업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안식의 삶을 올 한 해 풍성히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족한 삶을 새해에 더욱 온전하게 누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더 깊이 나아오실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