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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12.27 새벽말씀

권화영2023.12.27 09:0112.27조회 수 1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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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빌립보서2:1-4)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2)'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빌립보서2:1)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 사랑의 무슨 위로, 성령의 무슨 교제, 긍휼이나 자비' 네 개의 짧은 구가 나옵니다.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마음, 우리에게 행하실 때 우리에 대하여 가지신 마음입니다.

->네 개의 구가 A라는 전치사의 하나의 절로 묶여 있으며 '~이 있기 때문에' 입니다.

->(빌립보서2:1) '그러므로 너희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성도된 우리 마음에 이미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의 문제입니다.

->(빌립보서2:2-4) 하나님의 마음이 성도의 삶에서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열매를 맺는지의 내용입니다.

->첫째, '무슨 권면'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입니다.

->권면은 지적하고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권면의 목적은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권면의 원리로 행할 때 이와같은 열매가 맺어집니다.

 

->둘째, '사랑의 무슨 위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상황 속에서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한다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마음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감격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으려면 그 사랑을 받기 전 우리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랑을 받기 전 우리의 상태는 단순히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로 심판을 받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세상은 죄인된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심판의 현장이나 예수님이 그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베풀어주신 사랑, 아가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에 속한 위로,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위로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로를 뜻하는 헬라어는 '파라모다온'이며, 그 의미는 '누구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다'입니다.

->사랑의 위로는 조건없는 사랑으로 누구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거는 행위를 담고 있는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죄인되었던 우리에 대하여 먼저 보이신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성경전체를 통틀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난 하나님의 모습이 이와같으며, 하나님은 늘 아무런 조건없이 찾아오셨고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거시고 대화하시고 설득, 설명, 권하셨으며, 강요하시거나 명령하신 적이 단한번도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이 하나님이 명령하시거나 겁박하셔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원리가 좋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시는 과정이 무조건 나옵니다.

->사도 바울,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선지자들에게도 그러하셨고 복음서에서 말씀이신 하나님, 예수님이 제자들과 아프고 소외된 자들을 대하실 때도 그러하셨습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찾아오셔서 곁에 가까이 다가가셔서 말을 거시는 하나님의 원리가 반드시 먼저 등장합니다.

 

->(빌립보서2:3) '사랑의 무슨 위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입니다.

->다툼은 이기적인 야심에서 비롯된 당파심, 경쟁의식을 뜻하며, 자기가 가진 조건과 자격을 내세울 때 발생합니다.

->허영은 오류에 빠져있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자기의 의를 주장할 때 발생합니다.

->교회가 온전하다면 다툼과 허영은 발생할 수 없는 성격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교회안, 무조건적인 사랑 안에서 받는 위로와 복음의 의미를 계속 알아갈 때 교회는 절대로 다툼이나 형영이 발생할 수 없는 성격의 모임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를 높이고 목회자에게 집중되는 모습을 보면 사제주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개신교에서 성직자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루터는 모든 성도의 직업을 성직이라고 불렀습니다.

->목회서신이라고 불리는 (디모데전서1:15-16) 사도바울이 괴수인데 그런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단하나 나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 것은 앞으로 믿는 자들에게 본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은혜와 구원을 받은 이유는 우리의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 단지 앞으로 믿는 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굳이 구원받은 조건과 자격을 말한다면 주님이 나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를 먼저 구원하시고 직분자로 세우신 이유는 나와 같은 자도 주님이 참아주시고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앞으로 주를 믿어 영생을 얻은 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 마음의 깊은 죄의 본성을 들여다 볼수록 내게서는 그 어떤 조건도 나올 수 없으며, 어떤 사람에게도 자격을 내세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중에 누가 조건과 자격을 논하며, 다툼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다투고 경쟁, 시기하는 것만큼 모순되는 모습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허영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자기 의를 주장할 수 있는 자들입니까?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위에 서 있는 공동체이고 복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의'만 나타납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 각자의 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의가 조금이라도 새어들어가는 순간 복음이라고 할 수 없으며, 거짓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내가 주인되어 살아온 지난 모든 삶이 온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된 내게 선하고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진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로는 비참한 고통과 불행을 벗어날 수 없기에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죄의 결과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해결하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 것이기에 오직 의는 믿음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모인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자기의 의견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이 자기의 의가 되어서는 안되며, 될 수 없는 공도체가 교회입니다.

->우리중 누구에게도 허영의 근거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무슨 위로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에 오늘도 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으로 누군가의 곁에 다가가서 그 마음으로 말을 걸고 타이르고 위로합시다.

->그 위로가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무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사랑의 무슨 위로로 행하는 삶의 축복을 실제적으로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각자의 모습속에서 사랑의 무슨 위로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이 온전히 근거가 되어서 결코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사랑의 무슨 위로로만 서로를 대할 수 있는 복된 교회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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