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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12.8 새벽말씀

권화영2023.12.08 09:0212.08조회 수 1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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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욥기32:1-22)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욥은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주장하는 지혜, 인과, 보응, 행위의 원리와 맞서 왔습니다.

->세 친구들이 주장한 원리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다, 인간이 행한대로 갚으신다,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악을 행한 결과이므로 악행을 인정하고 돌이켜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욥기32:1)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의 의미는 욥이 하나님 앞에 무결함을 주장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근거로 자신을 악인으로 규정하는 이들의 원리에 대하여 끝까지 대항했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악인의 형통과 자신의 행적을 반례로 들면서 그들에 대하여 반박하고 풍자함으로 하나님은 행위의 원리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처지를 두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기대어 호소했습니다.

->욥은 친구들 앞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을 아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서 은혜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서 있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세 번씩이나 점차 강한 어조로 신의 보응과 악의 결과를 말하면서 돌이킬 것을 강권하였음에도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는 것을 보고 말을 그쳤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할 말이 없어서 그쳤다고 말하지만 엘리바스가 마지막으로 말한 것처럼 남은 것을 불이 삼킬 것이라고 욥이 당하게 될 결과를 얘기하는 것으로 사실상 세 친구는 욥에 대하여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엘리바스, 소발, 빌닷이 행위의 원리를 내세웠던 이유는 자기들을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인된 상태를 모르기에 죄의 원리로 행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죄의 결과를 맞이 할 수밖에 없는 자기들의 처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욥과 세 친구들을 비난하는 새로운 인물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엘리후의 뜻: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보다 젊은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세 친구들은 욥에게 얘기할 때마다 그들의 연륜, 경험, 전통을 얘기했으나 새인물 엘리후는 젊은사람으로서 달랐을까요?

->만약 엘리후가 하나님을 아는 자로 등장했다면 욥을 소개했듯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이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욥기32:2-3)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라고 화를 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것만 보아도 엘리후가 하나님을 모르는 또 한명의 죄인이자 세 친구의 결정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말한적이 없습니다.

->엘리후의 말에는 욥이 자기의 악행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만드셨다고만 하니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불의하게 만들었다는 엘리후의 해석이 반영된 것입니다.

->결국 욥이 악행자이기에 고통을 당한다는 원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 친구가 욥에 대하여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 정죄한 것을 문제삼는 것은 자신은 욥을 능히 정죄할만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엘리후가 화를 내는 이유를 통해서 그가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세 친구의 원리를 강화하여 주장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화를 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엘리후의 말을 들어보면 절대 겸손한 말이 아닙니다.

->(욥기32:6-10) 마치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받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실상은 자기의 말, 의견을 말할 뿐입니다.

->세 친구가 그러했듯이 엘리후도 자기 중심이 된 하나님, 인간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신에 대하여 주장할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원리는 사람을 불편하고 피곤하게 하며, 피말리고 질리게 합니다.

->절대로 바로 말하지 않고 반드시 먼저 우위를 정하는 작업을 합니다.

->본론을 말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하며 예열의 시간이 긴 엘리후를 바라보면서 표현이 고상하고 우와하다고 인격적인 것이 아님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설득하는듯 보이지만 결국 자기의 의도와 목적대로 따를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고 겁박하는 것입니다.

->표현은 그렇지않으나 말의 의도와 목적, 동기, 그의 말을 듣는 상대방을 자기의 뜻, 생각, 논리대로 끌고 가고자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것만큼 고약하고 비인격적인 것은 없습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늘 대화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목적을 이루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등을 주의 깊게 돌아보아야 할 이유는 내가 중심이 된 죄의 원리가 또아리를 틀고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욥기32:20-22) '내가 말을 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말합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하여 신앙적인 이야기, 신앙적인 방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수백번 사용한다해도 하나님의 원리가 없으면 그 말로 사람이 실족하게 되고 그 방식으로 사람이 살 수 없게 됩니다.

->교회도 마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였다할지라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원리가 없으면 언제든 형제가 원수가 되고 한순간에 천국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욥기33:5-7) '그대가 할 수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이 말이 진정으로 나와 남을 동일하게 여기며 하는 말인지 잘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자기의 위엄으로 두렵게 할 수 없고 자기의 손으로 누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의도는 신의 위엄으로 욥을 두렵게하고 신의 손으로 욥을 누르기 위한 말들을 쏟아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두렵게 하고 좌지우지하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주어 누르는 방식은 하나님의 원리가 아닙니다.

->엘리후는 자기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바를 지키기 위함이지만 내가 지켜야 진리가 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하는 것입니다.

 

*엘리후가 본론을 바로 시작하지 않는 모습을 잘 보시면서 우리 안에도 있을 법한 모습들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지켜야 진리되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가 나를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를 따라 행하는 평강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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