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욥기11:1-20) '그리하면'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욥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욥과 그의 친구들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말이 비슷해 보입니다.
->(욥기9:2-3)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욥기11:2,7)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욥기9:4,10 )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욥기11:7-9)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스올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크심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욥기9:32-33)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할 수도 없고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욥기11:10-11)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재판을 여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문자적으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표현상으로 보면 비슷해 보입니다.
->욥과 소발, 엘리바스와 빌닷이 하는 말들을 보면 욥이 하는 말과 비슷해 보이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욥의 말을 빌어서 양측의 말을 간단히 요약하면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를까요?
->표현상, 내용상으로 비슷해 보일지라도 원리가 다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분량과 수준이 어떻게 드러날까요?
->신앙의 년수와 열정으로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원리, 말과 행동으로 묻어나는 원리로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원리, 그의 말과 행동에 묻어나는 원리는 하나님은 자신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되기까지 단 한번도 사람들처럼 허물을 찾고 죄를 들춰내어 그것에 대하여 학대하거나 멸시한 적이 없으셨음을 알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까닭이 없다고 당당히 하나님 앞에서 항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욥은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이 이해, 해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친구들의 말에 대하여 반박하고 적극적으로 항변하는 이유는 그들의 말과 하나님이 자신을 대하신 원리와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어떠한 원리로 자신을 위하여 일하셨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욥기10:8-12) 살과 가죽으로 입히시고 뼈와 근육을 엮어서 몸을 만드셨듯이 욥이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을 그때에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일해 주셨듯이 오직 은혜로 생명과 사랑을 주신 그 하나님이 바로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신 욥의 하나님, 욥이 아는 하나님, 욥이 경외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욥기10:13-17)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호소하는 것이자 마치 친구들의 원리가 맞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고발하는 말들일 뿐입니다.
->고통이 극심한 나머지 하는 말들이나 그 가운데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 할 수 있는 말들을 잘 구분하면서 욥이 어떠한 원리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지, 하나님이 어떠한 원리로 행하시는 분인지를 욥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분별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욥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발과 앞선 친구들은 하나도 다를 것없는 원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욥기11:13-15)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말합니다.
->소발의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접속사는 '그리하면'입니다.
->'그리하면'을 기준으로 앞의 내용은 조건적 행위이고 뒤이은 내용이 그 행위에 따른 결과, 보상입니다.
->'그리하면'은 하나님의 토라, 모세오경에 자주 등장하는 접속사이기도 합니다.
->(신명기4:1,6:3)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하나님과 소발의 '그리하면'은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하면'은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행하였을 때에 '삶의 열매'를 강조하는 것이며, 소발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행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주어지는 '신의 보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리하면'은 행할 수 없는 자가 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오심, 앞으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하는 것이며, 소발은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스스로 행함으로 신에게 보상을 받게 된다는 인간의 행위를 강조한다는 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소발을 비롯하여 엘리바스와 빌닷이 이야기하는 '그리하면'은 '인간의 행위, 자기행위에 따른 신의 보상'을 강조하는 원리로써 삶 가운데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서 작동하는 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그리하면'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까?
*오직 은혜로 생명과 사랑을 주신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사람과 다른 하나님이 돌보시고 지키시는 복된 삶을 온전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