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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11.8 새벽말씀

권화영2023.11.08 09:2711.08조회 수 1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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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욥기5:1-6:30)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제목의 말씀으로 묵상하겠습니다.

 

->욥기5장은 까닭없는 욥의 고난에 대하여 고난의 까닭을 이야기하는 엘리바스의 계속되는 말입니다.

->욥기6-7장은 엘리바스의 말에 대한 항변에 가까운 욥의 대답입니다.

 

->엘리바스는 계속해서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 행위의 원리로 욥을 몰아부칩니다.

->(욥기4:12-5:16) 사람이 자기 행위에 있어서 아무리 지혜로울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결국 욥의 행위 가운데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을 까닭에 대해서 욥이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욥기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너의 행위를 다 보고계시니 행위 중에 징계받을 만한 까닭이 있으므로 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찾고 너의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면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기5:27)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 말합니다.

->이미 경험되고 검증된 원리로써 행위의 원리를 끝까지 강조하면서 덧붙이는 엘리바스의 말입니다.

->세상은 실제 그렇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엘리바스의 말대로 돌아가는 것 같고 그 원리에 부합하는 일들만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 안에도 행위의 원리가 마치 기독교 원리로 주장되어 작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다 하신다고 말하지만 복을 받을 만한 종교적 행위가 강조되거나 그 행위를 잘 해낸 사람들의 성취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시험, 징계에 대하여 종교적인 행위로 극복하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었다는 소위 간증을 통해 신자들에게 각종모임 참석을 독려하고 여러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렸습니다.

->간증하는 본인은 복을 받아서 감사한지는 모르나 그가 징계라고 말하는 일을 동일하게 겪고 있거나 끝내는 복이라고 할만한 결론을 맞이하지 못한 이들은 아마 교회 밖에서 홀로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삼켜야 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고도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자라게 하시려고 만드신 교회가 가장 큰 아픔을 말할 수 없는 교회, 자기의 치부를 끝까지 숨겨야 하는 교회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자기하기에 달렸다는 것과 신마저도 우리의 행위를 보고 그대로 갚는다는 다른복음, 교훈이 세상이 아닌 교회에서 당연한 원리로 받아들여져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 행위의 원리로 일하지 않습니다.

->욥기를 설명할 때 하나님은 보응의 원리로 일하시지만 그 원리를 초월하시기도 한다고 말하나 하나님은 애초에 보응의 원리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출애굽기33:19)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필요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지 은혜 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를 보시고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긍휼이 여길 자, 긍휼히 여겨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지 긍휼히 여김을 받을 만한 행위를 했는지를 보시고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응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로만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죄인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계시의 은혜를 구약의 역사 내내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이 결국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다는 것까지 아셨기에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기까지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원리, 복음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인은 은혜의 원리를 생각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의 문제가 죄라는 것을 모르기에 끝까지 스스로 무엇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행함을 기준으로하는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를 고수하고 주장하게 됩니다.

->욥의 친구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 등장하므로 그가 하나님을 운운하면서 징계를 문제삼으며 '볼지어다 우리가 연구한 바가 이와 같으니 너는 들어보라 그러면 네가 알리라'라고 확고부동하게 끝까지 얘기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행함을 기준으로한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욥은 하나님을 아는 자로 등장합니다.

->욥이 하나님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는 소개를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같은 시대의 실제인물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그 은혜를 증거하는 자들입니다.

->욥은 이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일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자로서 소개되고 있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욥에 대하여 욥도 하나님에 대하여 자신감이 있는 것입니다.

->(욥기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그만한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그 욥을 하나님이 만들어내셨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욥의 모습,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욥의 현재가 하나님이 이루어내신 열매이기에 하나님은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삼십여년의 세월동안 인도하신 후에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까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모습을 시험해 보이셨던 것처럼 자신있으셨던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에 대하여 하는 말입니다.

->(욥기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말합니다.

->욥은 교만에 가까워서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그의 인생의 세월동안 받았던 은혜와 경험했던 하나님이 보응의 원리로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욥기6:14)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욥은 낙심해 있으며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 너무나 괴롭고 힘겹습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것을 고난 가운데에서도 초연해야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절대 초연할 수 없습니다.

->고난 당한 이를 향해서 우리가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슬픔이 다할 때까지 슬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 우리가 설사 놓을지라도 결코 우리를 놓지 않고 끝까지 부여잡고 있는 것, 우리에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한가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입니다.

->14절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내뱉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에 가능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래 내가 너무 힘들다, 내가 너무 낙심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설사 저버린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너희와 다르게 나를 저버리시지 않고 나를 동정하실 것이다, 나를 헤아려주실 것이다, 나는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다'라고 울부짖다가 쉬어버린 목소리일테지만 이 한마디를 내 뱉음에 있어서 어떠한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는 당당한 음성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셔서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 서로에 대해 자신감 넘치는 복되고 든든한 관계를 더욱 온전히 누려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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