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욥기4:1-21)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제목의 말씀으로 묵상하겠습니다.
->'욥의 고난은 까닭이 없다'는 욥기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그가 당한 고난이 그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던 욥에 대하여 사탄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욥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말을 하자 하나님이 사탄에게 전권을 주셔서 욥의 소유물과 자녀들을 치고 욥의 몸까지도 종기로 치게하셨다는 설명은 문학적 설정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욥에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우리의 삶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3장에서는 욥이 자기생애를 저주하기까지 탄식하며, 절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장면으로 하나님은 불신앙의 장면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을 소개하는 것이고 까닭 없는 고난으로 아파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4장부터는 하나님의 대답이 있기 전에 욥의 친구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까닭 없는 고난에 대하여 고난의 까닭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이며, 길고 반복적으로 다루어집니다.
->엘리바스가 먼저 등장하며, 그의 주장의 핵심은 (욥기4:7-9)입니다.
->(7절) 죄가 있으면 멸망하고 정직하지 않으면 끊어진다 말하고 있으며, 욥에게 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8,9절)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면 사라진다라는 인과보응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리자체는 틀린 것이 아니며, 성경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다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엘리바스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신의 보응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행함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열매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없기에 죄의 열매만 거둘 수 밖에 없는 죄인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강조합니다.
->즉 성경의 강조점은 보응의 원리가 아니라 은혜의 원리인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로 등장하므로 엘리바스가 하는 모든 말은 신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투영된 것입니다.
->(욥기4: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말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의로움과 깨끗함을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기준으로 삼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람을 감당하고 포용하는 성품으로 사용하십니다.
->(욥기4: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말합니다.
->엘리바스의 질문은 하나님의 성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무지한 말을 던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말씀의 '하물며'와 비교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하물며'라고 질문하십니다.
->(누가복음18:1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말씀합니다.
->(누가복음18:8)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예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밤낮 부르짖는' 행위가 아니라 '택하신 자들'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의로움과 깨끗함을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분이시기에 죄인을 위한 죽음까지도 가능한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까닭이 없다'가 욥기의 중요한 전제인 이유는 우리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해왔을 인과의 원리, 보응의 원리, 종교의 원리를 탈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하나님을 모르는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의 왜곡된 관점으로 쏟아놓는 이야기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의 말을 잘 분별해 보시면서 혹여 우리 안에도 자리하고 있을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아 가실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안에서 온전해져가는 하나님이 까닭없는 고난의 시간 중에도 충분히 바라보면서 의지할 만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