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열왕기상15:9-24)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매'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르호보암에 이은 유다의 두 왕, 부자지간인 아비얌과 아사의 행적이 소개됩니다.
->(열왕기상15:3,11,14)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라고 평가합니다.
->아비얌의 통치기간은 3년, 아사의 통치기간은 41년이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요?
->정답은 그냥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하시거나 복을 주신 결과가 아닙니다.
->여로보암의 아이가 병들어 죽게 된것과 같습니다.
->정작 범죄한 여로보암은 22년을 통치했습니다.
->또한 유다왕들 가운데 비할자가 없는 전무후무한 악을 행했던 유다의 14대 왕 므낫세는 55년 최장수 통치를 합니다.
->신앙적인 차이를 인간적인 잘됨과 못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이 좋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니며, 믿음이 없다고 다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죄인이라는 점에서 구약의 인물들은 신앙의 차이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러나 달라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윗과 오늘 본문의 아사가 그렇습니다.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에서도 아사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아사의 행적에 대해 두부분으로 나뉘며 분위기가 서로 상반됩니다.
->앞부분에서는 신실해보이나 뒷부분에서 전혀 신실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가 오해하는 것은 '그가 끝까지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까워합니다.
->(열왕기상15:23) 우리는 그가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다는 것에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발에 병이 든 것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며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잘한것 처럼 보이면 어떤 복을 받았을까, 못한 것처럼 보이면 어떤 저주를 받았을까, 복받은 것처럼 보이면 무엇을 잘했을까, 저주를 받은 것처럼 보이면 무엇을 못했을까' 우리는 이렇게 성경을 보는 것에 익숙합니다.
->사실 성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주변,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일들을 이런식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상벌의 원리, 인과응보를 따라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꼭 기억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러한 원리로 죄인들에게 일하였다면 우리중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앞선 왕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성정과 죄의 마음을 가졌을 '아사'입니다.
->아사의 앞부분 평가입니다,
->(열왕기상15:11-15) 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 그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여 남색하는 자를 쫓아내고 우상을 없애고 어머니가 만든 아세라상을 찍어 불살랐으며, 그의 어머니를 폐위시키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성전에 그의 아버지와 자기가 성별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받들어 드린 것은 신앙적 행동이 아니라 자기 왕위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 종교적 기반을 다지는 행위였을 뿐입니다.
->사당을 없애지 않은 동기와 같습니다.
->애매하기는하나 앞부분의 평가는 잘한 것으로 보겠습니다.
->아사의 뒤이은 평가입니다.
->(열왕기상15:16-19) 전쟁은 르호보암 때부터 일어나 3대에 걸쳐서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가 유다를 치러 올라온 것은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고 자기가 성별한 은과 금과 그릇들을 받들어 드린 아사는 다르게 행하여 성전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여호와를 의지했을까요?
->여호와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화해를 청했을까요?
->아사가 즉각적으로 취한 조치입니다.
->(열왕기상15:18) 성전의 물건을 모두 아람의 왕 벤하닷에게 바치며, 이스라엘을 물리쳐달라고 빌었습니다.
->르호보암 때 애굽의 왕 시삭이 쳐들어와서 성전의 물건을 가져간 것은 약탈이라고 한다면 오늘 아사가 한 행동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죄의 특성 중 하나는 전염성입니다.
->죄는 유사한 죄를 낳고 당연한 것이 되게 합니다.
->솔로몬이 산당과 우상을 세우게 되니 뒤이은 왕들이 모두 같은 행동을 합니다.
->앞으로 유다 왕들이 성전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는 아사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바아사가 맞부터 만들어낸 결과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남쪽과 북쪽의 모든 백성이 전쟁과 고역으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왜 아사를 '여호와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그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 평가하게 된 것일까요?
->죄인들에게 평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으며,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죄인들간에 우열을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마치 평가처럼 보이는 기술의 강조점은 '그가 정직했다, 온전했다'가 아니라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가 강조점입니다.
->정직함과 온전함의 근거가 여호와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와같은 기술들이 있다면 여호와께 근거가 있음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사가 선왕인 아비얌과 다르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달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열왕기상15:3-4) 하나님이 주신 등불, 하나님이 유다에 비추신 등불 때문입니다.
->등불이 의미하는 바는 죄인들의 행위, 인간 왕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다윗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므로 다윗에게 베푸신 은혜가 여전히 유다와 온 이스라엘을 비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어둠가운데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나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다윗에게 베푸신 그 은혜가 여전히 온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비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은혜의 등불이 비춰졌기에 아사는 그나마 우상종교적인 행태를 버리는 일까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인간이 왕된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으나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 하나님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어이 그 길을 버리고 인간이 왕이 되어 자기가 주인된 길을 걸어가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주도하는 역사의 한켠에서 하나님의 길을 다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죄인들에 대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일방적인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의 길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심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심으로 확증해 보이신 것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인되었던 우리가 이제는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갈 수 있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고 여호와 앞에 온전한 성도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의 계시와 복음의 은혜가 비추어지시는 성도의 복된 삶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열왕기서를 묵상할 때에 잘하고 못함의 평가적 묵상이 아니라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 동일했으나 하나님께서 계시와 은혜의 빛, 등불을 비춰주셔서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그 백성을 향하고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신다의 묵상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은혜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복음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감격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