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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9.1 새벽말씀

권화영2023.09.01 16:1009.01조회 수 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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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시편 94:1-23)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시편 94편은 하나님의 원리와 부합하는 표현과 죄의 원리가 부각되는 표현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도 존재적 죄인이라는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의 원리에 부합하는 신앙고백을 하면서도 그가운데 여전히 죄의 원리가 부각되는 표현들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1,2절) '여호와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라고 부르며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시라고 요청합니다.

->(12,13절)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무덤)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실 것이다 말합니다.

->(23절)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실 것이라고 탄원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셨다면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여 내가 주인되어 살았던 우리는 벌을 받았어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것 만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32)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이 사형에 해당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사형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죄의 결과가 결국 사망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시편기자의 말대로 죄인되었던 죄악을 우리에게로 되돌리셨다면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복음의 원리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대조는 악인과 의인입니다.

->시편기자들이 악인과 의인을 나누는 기준과 하나님이 나누시는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시편기자들은 언제나 행함을 기준으로 나눕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악한행동을하는 자는 악인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선한행동을 한 자는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행함이 아닙니다.

->구약성서와 복음서에서의 하나님은 행함을 기준삼지 않으시고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의롭게 행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볼 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로마서의 선언을 항상 전제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사로잡힌 존재적인 죄인이기에 행함을 기준으로 의인과 악인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나누시는 기준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백성,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을 하나님이 의롭다 여기시는 의인이고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이 악인입니다.

->사실은 모두 악인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백성을 의인이라 칭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실 때의 기준도 행함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45: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

->여호와로 말미암아 내 백성이 되고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말씀하신 그언약으로 의롭다 하시고 구원과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8절)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 오늘 본문기자가 악인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4-7절) 시편기자는 이들이 어떠한 일을 행했는지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행태는 왕은 물론이고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심지어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탐욕을 부리고 거짓을 행하였다 기록합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서에 나타나는 하나님 백성의 실상입니다.

->우리도 시편기자의 고발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이런일을 할 수 있느냐고 우리와 상관없는듯 딴청을 피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하나님을 떠나 죄에 사로잡혀있기에 이렇게 행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결과 스스로 자취한 고통을 당하고 불행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12절) 결국 하나님의 백성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죄의 영향력 아래에서도 죄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있는 것은 그의 행함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것으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죄의 길로 행하는 모든나라 가운데 이스라엘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관된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물론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왜곡된 원리로 오해합니다.

->(13절) 자신이 스스로 주의 징벌을 받고 교훈을 받아서 환난의 날을 피하게 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기자 자신도 환난의 날을 피할 수 없는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 중 하나일 뿐입니다.

->(17-2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도움이 되시고 인자하심으로 그를 붙들어 주셨기에 하나님이 그의 요새, 피할 반석이 되시어 환난의 날 가운데 건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3절) 사실은 모두가 자기 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끊어질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죄에 사로잡혀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요새가 되시고 그가 피할 반석이 되어 주시는 은혜를 입었기에 시편의 기자가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설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셨다면 우리는 이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하나님,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셨다면 죄인되었던 자들이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복수하시고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처럼 표현된 여러말들 가운데 복음이라고 할만한 메세지가 있습니다.

->(14절)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시편기자는 환난의 날에 피한 날을 자신의 행함을 근거로 한 말이지만 그로 하여금 주의 징벌을 받고 주의 교훈하심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를 위하여 일하신 하나님의 동기인 것이 분명하기에 복음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유일한 동기는 자기 백성이며,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교만한 자들,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일지라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기 아들을 버리심으로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15절)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마음이 정직할 수 없는 죄인들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셔서 하나님 앞에 마음이 정직한 자들로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꺼이 따르는 성도들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겠다는 복음의 말씀으로 들으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정직할 수 없는 죄인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셔서 마음이 정직한 자로 새롭게 하셔서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고야 말겠다는 놀라운 복음의 말씀으로 들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복음이 성취된 존재가 우리인 것을 아시고 하나님을 아는 복된 자로서 하나님의 정의를 따라 행하는 복을 오늘 하루 주어진 삶 가운데 풍성히 누리시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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