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보는 목사님의 개인적 관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은 믿습니다.
->그러나 글자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문자주의,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직접하신 말씀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특정사건을 행하시거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고 말하게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 원리를 가르치는 전과정을 포괄하는 것이기에 문자주의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본문, 원문과(text) 맥락, 문맥을(context) 모두 고려해서 분별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특별히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인간의 변화입니다.
->창세기1,2장의 자유인으로서의 인간과 창세기3장 이후부터 복음서까지 죄인이라는 인간이 이어집니다.
->사도행전 이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인간이 성도로 변화되어가며, 변화시켜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구약과 복음서는 인간이 죄인되었다는 관점으로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볼 때는 인간이 죄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며 본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구약성경을 볼 때 하나님이 죄인의 상태와 수준을 고려하여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인 것이 아닙니다.
->죄인의 처지와 상태를 고려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죄인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거기까지만 해라' 입니다.)
->이 말씀이 신약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나님의 원리로 말씀하십니다.
->또한 구약과 신약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이 하는 여러 말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욥기서의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의 사정을 위로하는 말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정죄였습니다.
->이 말이 의미와 상관없이 크리스찬 사업장에 많이 걸어놓게 된 성경말씀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구절이 있습니다. (욥기23:10)
->욥의 말이나 신앙고백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욥이 자기가 당하는 고통, 이해할 수 없는 자기인생에 대하여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친구들에게 항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는 내가 왜 이런 괴로움을 당하겠느냐'고 자기에게 보응의 원리와 자기의 의를 주장하면서 친구 엘리바스에게 하는 말입니다.
->찬양가사로 쓸만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뒤섞여 있다는 말의 의미는 잘 분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전과정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죄인들의 말과 심지어 사단들이 하는 말도 있습니다.
->잘 분별하여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구약의 시편 내용과 신약의 서신서 내용은 전혀다른 차원임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구약은 인간이 죄인되었다는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고 사도행전 이후 서신서는 성도가 되었다는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자와 서신서의 성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존재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인간은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서신서의 인간은 죄의 문제가 해결된 존재입니다.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고백이기에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이 됩니다.
->우리가 다윗을 추앙할 정도로 높일 때가 많으나 다윗보다 온전하고 강건, 행복, 평안, 풍성, 아름다운 존재로 일컫는 존재가 '성도'입니다.
->진정한 성도다운 고백을 찾으시려면 서신서를 보시는 것이 안전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서신서의 고백을 받아내시기까지 하나님의 일하심, 구약과 복음서, 사도행전까지의 전과정을 보지않으면 서신서의 고백조차도 우리가 바르게 해석할 수 없기에 모두 보아야 합니다.
->시편을 비롯한 구약에 속한 성문서들을 볼 때 기자들 또한 죄인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한 사람들이지만 존재적으로 하나님을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의 혜택을 받으면 감사와 찬양을 갖고 곤고한 처지일때는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의 공로인양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떳떳한 의인인양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이지 않으므로 분별해야 합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계와 형벌을 가감없이 요청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말씀과는 배치되는 말씀입니다.
->서신서의 찬양, 고백, 기도와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을 볼 때는 하나님의 원리에 부합하는 표현속에서 은혜,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원리가 부각되는 표현도 나오기에 잘 분별해서 시편과 성문서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