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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기지교회

나누고 싶은 글 23-8.17 새벽말씀

권화영2023.08.17 19:3508.17조회 수 2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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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22:1-30)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하겠습니다.

 

->22장은 하나님이 왕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2:1, 2, 6,11,18, 24) 왕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나 꼭 왕들만 이렇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17:20) 왕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해서는 안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왕을 사람들 위에 있는 특별한 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에게 하신 말씀은 왕이 대표하는 모든 백성을 향한 말씀인 것입니다.

 

->(예레미야21:12)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유다 왕의 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이나 제사와 관련되어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일을 왕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위한 행동을 하라 말씀합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지점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하다' 는 '다르다' 입니다.

->세상이 따르는 다른 우상신들과 다르시며, 이런 말씀으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22:1-3) 자기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행동, 하나님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행동을 왕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야22:10) 여호아하스가(살룸) 어떻게 행했는지 소개합니다.

->(예레미야22:13-14)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고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져주기는 커녕 자기가 탈취하고 있습니다.

->왕이 백성을 탈취하고 있습니다.

->자기 이웃을 고용하여 품삯을 주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는 여호아하스의 마음이 자기 형제, 이웃 위에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22:14) '~자기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여호아하스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자기를 위한 마음은 반드시 갑을과 우열의 원리로 점철될 수 밖에 없고 비교와 경쟁의 원리에 투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22:15) '왕의 자리를 곤고히 하기 위해서 기껏 한 일이 누구에게 질세라 집짓기 경쟁을 하느냐' 라고 하나님이 여호아하스에게 비꼬는 어투로 말씀하십니다.

->여호아하스의 비교대상이 이러한 것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한 비교대상을 제시하시며 반어법으로 표현하십니다.

->(예레미야22:15b)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느니라'

->여호아하스의 아버지 요시아 왕과 비교합니다.

->요시아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기에 잘 먹고 잘 살았다, 그 때에 그 뿐아니라 그의 백성이 형통했다 말씀합니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몇 안되는 왕입니다.

->죄의 길로만 행하는 왕들의 계보 가운데 다른 길로 행하는 왕의 이름이 등장할 때 그 왕을 특별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다른 길을 보여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인물을 특별하게 여기기보다 다른 길, 은혜를 주셔서 진정으로 비교할 만한 대상을 제시해 주신다, 모두 똑같이 행하는 이때에 은혜를 주신다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조점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 입니다.

 

->(예레미야22:8) 여러 민족들이 이 성읍으로 지나가며 유다 왕이 다스리는 성읍이 망함은 어찌됨인고 질문할 것임을 하나님이 가정하십니다.

->(예리미야22:9) 하나님이 가정하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까닭이라' 표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 하나님을 위하여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종교적 일을 할 때 그에대해 하나님이 보장하시고 복을 주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하여 오해한 대표적인 사람들이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질문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 복, 구원을 얻으리이까?' 입니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들의 질문 가운데 생략된 말은 '하나님을 위하여' 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영생은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죄인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없는 존재, 하나님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서 저주받은 존재인 이방인, 고아, 과부였던 것입니다.

->그들을 상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완벽하게 오해했고 종교적으로 왜곡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인간 중심이어서는 안되며,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은 곧 사람중심,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사람이 상함을 당하면 결코 안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과 다른 표현이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신을 섬긴다'의 반대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정의와 공의를 사람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괴리가 생겨서 기독교가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유다의 왕과 모든 백성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22: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네 습관이라' 말씀합니다.

->유다 온 백성의 반응이며, 하나님을 떠난 모든 죄인의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22장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죄인, 무지한 죄인은 결코 정의와 공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기대하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은 오직 성도만이 가능합니다.

->성도만이 선을 행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로 계시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예수님이 높으신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아니고서는 정의와 공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있는 곳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소망, 화해, 회복, 넓은 품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11:6-8)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가 어린 양, 어린 아이, 어린 염소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없애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로인한 변화, 하나님이 죄인되었던 자들을 성도로 변화시켜내셨을 때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이리가 어린 양을, 표범이 어린 염소를, 곰이 암소를, 독사가 어린 아이를 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이런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존재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가 사자, 곰이었으나 물지 않는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물어 뜯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놀라운 은혜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성도가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 가운데 우리의 분량이 채워져 갈수록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본질, 사람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로 남을 살리고 세우는 법을 풍성히 누려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권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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