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9:7-16)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도 먼저 화자를 구분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7-9, 11, 13-16절)
->예레미야의 말입니다.
(10, 12절)
->오늘도 표면상으로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격노를 이어가시고 예레미야는 심판당하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말과 예레미야의 말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말(8:9)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는다' 말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결론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찾지 못할 수도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죄인과의 관계는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가 하나님과 죄인은 평행선과 같이 결코 맞닿을 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서 하나님과 죄인의 깨어진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화가 1-4장까지 반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내가 아버지일진데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이스라엘이 대답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이스라엘이 '어떻게'라고 답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 필요없다, 하나님이 없어도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라는 죄인의 결론이 눌러 담겨진 응축된 표현입니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핵심구절은(9:2) '간음하고 반역하여 심판을 당하게 된 백성을 광야의 어떤 자리라도 있다면 떠나고 싶다' 입니다.
->이것은 죄인에 대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결론이어야 마땅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고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를 당하는 것이니 이스라엘, 자기백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떠나셔도 되며, 떠나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셔도 이스라엘은 할 말이 없습니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을 차지하였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고 자기소견 옳은대로 행함으로 이방나라의 압제를 받는 결과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떠났기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부르짖으매' 였습니다.
->'부르짖으매' 의미를 하나님께 기도한 것으로 생각하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기에 부르짖는 것 말고는 고통속에서 주저앉아 울고불고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하나님께는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가만히 계셔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예레미야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말처럼 자기백성 가운데 계시지 않은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말처럼 내버려두고 떠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자기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결코 떠나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전하시는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7-9절)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 것입니다'
->(13, 14절) 하나님의 율법,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바알들과 세상의 풍조와 가치기준을 따라간 것입니다.
->죄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들의 마음이 완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죄인'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죄인되게 하는 죄, 이스라엘을 사로잡고있는 죄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이 완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10, 12절)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자초할 수 밖에 없었던 결과로 '불에 타버렸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라는 두가지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1차적으로는 전쟁과 포로생활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나 더 근본적으로는 죄가 가져올 결과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에 타버렸다' 뜻은 내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 중에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뜻은 아무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에 사로잡혀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을 얻기위해 달려가지만 그 가운데 어떤 사람도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다면 이스라엘은 이러한 절망과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결과를 하나님 편에서 벌하지 아니하겠고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 흩어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뒤로 칼을 보내리라와 같이 말씀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7절)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라는 말씀은 결코 떠나지 않으시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내 백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꼬, 내 백성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할꼬' 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10, 12절) 예레미야의 말이라고 구분하였으나 맥락상으로 보면 하나님의 심정, 인식에 더 가깝습니다.
->(10절)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삶의 터전이 불에 타버리고 지나가는 자가 하나도 없게 된 것을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이러한 절망과 불행에 놓이게 된 자기백성의 처지를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12절) '이 땅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냐, 이스라엘의 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이땅이 이와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며, '누가 지혜가 있어서 죄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아무도 알 수 없고 누구도 해결할 수 없다' 입니다
*자기백성 가운데 계시고 자기백성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만이 죄인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주님이신 것을 아시고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로써 죄로인하여 깨진 세상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상한 심령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을 주님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복된 삶을 누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아가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질 때 가능한 삶인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삶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라고 이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가운데,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바라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