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예레미야 8:18-9:6) '나를 알지 못하느니라' 제목의 말씀으로 상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화자를 구분하여 말씀을 들여다보기 원합니다.
->예언서를 다른 번역본으로 보면 문장부호가 있기 때문에 화자를 구분하기가 쉽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입니다.
(18절), (19절 상반절)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짓는 소리로다~' (8:21), (8:22절 하반절)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됨인고', (9:1-2)
->이스라엘의 말입니다.
(19절 하반절)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20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9절 하반절)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2절 상반절)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9:3-6)
->오늘 본문(8:18, 9:1)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주야로 울리로다'의 말씀은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로 불리우게 된 대표적인 본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격노하시는 반면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애통해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화자를 미리 구분하여 놓은 본문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8:21) 예레미야는 지금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심판당할 것, 혹은 심판당하는 것으로 인하여 슬퍼하고 근심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특별한 심정을 품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8:22) '이스라엘에 유향이 있고 의사가 있다면 왜 이스라엘이 치료받지 못하고 심판을 당해야 합니까?' 라고 예레미야는 항의하고 있습니다.
->(9:1-2) '내 머리가 우물이 되고 내 눈이 샘물이 된다면 밤낮으로 울 수 있을텐데, 광야에 머물곳이 있다면 백성을 떠나 그곳으로 가고싶다'라고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울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 머리는 우물이 아니고 내 눈은 샘이 아니다, 도리어 간음하고 심판을 당하는 백성을 멀리 떠나고 싶다, 이백성 가운데 있는 것이 내 마음을 근심하게 하고 병들게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솔직한 심정인 것입니다.
->예언자라하여 특별하지 않으며, 우리와 동일한 성정을 가진 인간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감정을 가감없이 밝힘과 동시에 여호와의 말씀도 가감없이 전하기에 다행인 것입니다.
->(9:3-6) '여호와께서 어디계시냐, 여호와는 우리에게 계시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이스라엘과 '간음하고 반역하여 심판을 당하게 된 이스라엘을 멀리 떠나고 싶다'는 예레미야에 대해서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과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자기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자기백성 가운데 거하고 계시기에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가 죄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알기를 싫어하는 것이 문제임을 하나님이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에 사로잡혀 악에서 악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것, 악을 행하는데도 지칠 줄 모른다는 것을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9: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조심하며 어떤 형제든자 믿지 말라 형제마다 다 완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함이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되어 있는 현실에 대하여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자기백성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자기백성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반역한 백성에 대하여 응징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간음하고 반역한 자들에 대한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간음한아내라고 비유하면서도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격노는 자기백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처지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의 고통을 체휼, 공감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에 사로잡힌 자기백성에 대하여 주야로 우는 존재는 예레미야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우물과 같은 머리로 죄인을 생각하시고 눈물의 샘 같은 눈으로 죄인을 바라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던 예수님도 그 성읍, 죄로 인하여 깨진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다'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를 당하는 심판으로부터 죄인을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백성을 버리거나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셔서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고 그러한 죄로부터 죄인들을 건져주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자들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알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성도의 삶으로 새롭게 하시는 구원의 삶의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을 기도하시는 가운데, 특별히 묵상하시는 자리에서 바라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예레미야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체휼하시고 공감하시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유일한 소망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아시고 그 하나님을 구원의 유일한 근거요, 소망으로 삼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러한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어졌음을 아시고 오늘 하루도 자기백성 가운데 계시며, 자기 백성을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복음 가운데 거하시므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기까지 자라가시기를, 복된 변화를 풍성히 누리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