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민수기 23:27-24:9)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아 행하려는 발람의 세번째 시도입니다.
앞서 두번의 저주시도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겠다'는 것을 인간이 뒤집을 수 없음을 알만하나 모압 왕 발락은 끝까지 이스라엘에 대해 저주를 시도하고 있음을 오늘 말씀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두번째 저주시도에서 말씀하신 들소, 수사자와 암사자의 이미지와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신 내용을 한번 더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세번째의 저주시도 역시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오늘 세번째 저주시도 속에서 하나님 주시는 교훈을 깨닫고 은혜를 묵상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1.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두고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격과 계획, 통치를 알지 못하면서 자기 욕망만 고집하며, 한번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27절) '다른 곳에 가서 다른 각도로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저주하려고 노력하면 혹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까' 라고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장소와 각도를 바꾸어도 안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거대한 세계사 가운데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겠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 왕인지 나타내겠다는 거대한 약속과 계획을 수백년 동안 이어오셨기에 하나님이 저주하실리가 만무합니다.
->이스라엘이 그저 여러나라 중에 하나의 나라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신도 여러 우상신 중 하나의 신이 아님을 발락이 모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은 독점적 계약, 언약을 맺은 상대입니다.
->이세상 많은 나라 중 이스라엘만 선택했고 너희에게만 복을 주며, 너희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나타내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스라엘의 생사화복을 주장하게 될 것이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언약과 계획, 계명과 통치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요행만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모두 종교행위가 됩니다.
->종교행위는 모든 종교에 있는 것이며, 값비싼 제물을 올려드려 나의 정성을 신에게 보여주는 것, 신을 감동시키기 위해 좋은 것을 바쳐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해야 겠다는 발상과 의도, 모든 것이 종교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종교행위와 같이 접근하면 판판이 실패하게 됩니다.
->발락 왕이 발람 무당을 통해서 저주를 시도하여 실패하는 것처럼 계속 실패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생활이 종교행위는 아닙니까?
->하나님은 '나는 인애를 원하며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고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성경 속에서 반복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우선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은 성경이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과 보통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바쳐드리고 봉사와 헌금을 많이하면 하나님이 감동하시어 나에게 복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겠지' 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보통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을 뛰어 넘습니다.
->(이사야 55:8-9) 하나님의 생각과 너희의 생각은 다르다 너희의 길과 나의 길은 달라서 내가 더 높으며, 높은 생각을 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준으로 하나님을 끌어내려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을 뛰어넘는 살아계신 왕, 위대하신 왕, 만유의 주, 만물의 창조자, 온 우주 만물과 세계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왕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내생각으로 재단하고 내마음대로 하나님을 움직이려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며, 실패할 수 밖게 없는 것입니다.
*나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생각, 나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 나보보다 더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나는 다르며, 내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수준에 묶어두고 요행을 바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는 오늘의 질문일 뿐 아니라 평생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묵상 앞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사귀며,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 말씀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외침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되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 자체가 복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주님을 섬기고 알아가면서 사랑하며, 그저 하나님 앞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참된 복입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서있을 수 있는 것,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면서 이아침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참된 복입니다.
->(24:1) 오늘 두번의 저주시도까지 모두 실패로 끝나는 것을 무당 발람이 보면서 더이상 저주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니 애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내려다보는 발람의 눈에 이스라엘이 너무 멋져보입니다.
->(24:5-7)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온 공동체가 예배공동체가 되어 전열을 가다듬고 존재하면서 머물고 있는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동행, 의지하면서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 자체가 행복이며, 참된 복입니다.
->우리는 그저 오늘도 깨어 기도하며, 이 아침을 시작하고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봉사가 주어질 때 봉사하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복이고 행복입니다.
->오늘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 할 수있는 것,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따라 삶터와 일터에 나아갈 수 있는 것, 삶터와 일터, 가정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며, 진짜 복입니다.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행복과 복을 누릴 때 진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상에서 불평, 불만을 한다면 미성숙한 사람이며, 감사를 고백하고 행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내삶에 좋은 이벤트가 다가오고 있어서 잠깐 설레이는 것, 오랜 계획이 이루어져서 행복한 것일까요?
->우리가 일상을 피해 어딘가를 다녀오면 힐링이 될 것 같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목을 축이는 것 같지면 시간이 지나면 더 목마르게 됩니다.
->오히려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패턴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일상속에서 주님을 모시고 주님께 예배하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가 행복이고 능력입니다.
*오늘 발람의 눈에 비친 이스라엘,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 자체가 능력이고 행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더 높고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 말씀합니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성품, 나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과 계명, 통치를 받고 그것을 의지하면서 나아가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삶을 원하십니다.
*일상에서 참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저 오늘도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 자체가 참된 행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