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말씀은(마태복음 21:1-11)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다루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세 번이나 구체적으로 인자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제삼일에 살아나심을 예고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기에 예루살렘 입성은 중요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는 관점이 같은 공관복음서입니다.
공관복음서의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키시고 갈릴리를 떠나 유대지역에서 사역하시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여행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보도합니다.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기간 만 3년의 기간동안 네 번의 유월절이 있었다 보도하며, 예수님의 시간행적을 유월절 기준으로 펼쳐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일 처음 세례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셰례를 받으셨고 그때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여 마침내 첫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서 성전의 타락상에 분노하시어 둘러엎으시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선포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성전의 주인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두 번째 유월절 즈음에 예루살렘으로 오셨습니다.
세 번째 유월절때에는 예루살렘에 나타나지 않으셨고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으며,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던 때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집중훈련을 하시며, 이방지역을 다니셨습니다.
마침내 네 번째 유월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십자가 사건이 일어난 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은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깨닫고 함께 말씀 나누기를 원합니다.
1.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서 왕의 권위를 사용하십니다.
->(1~3절) 예루살렘에 기까이 가서 예수님은 두 제자를 보내어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말하면 된다고 이르십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주, 주님'의 의미는 주인님, 마스터, 높은 어르신을 뜻하는 정도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 여호와'를 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왕 되시는 여호와의 권위를 가지고 나귀를 징발하고 계십니다.
(징발이란? 전시에 점령자가 군사적 필요에 따라 점령한 적지의 개인 또는 지역으로부터 물품 및 노무의 공급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세상수준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의 본체 여호와가 되시는 그분이 '주가 쓰시겠다'라는 말씀으로 징발하시며, 왕의 권위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가 쓰시겠다' 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힘을 요구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시공간과 자원을 사용하고 점유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니 사는 동안 나의 생각과 목표, 욕망과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을 살게 될 때 참된 복과 은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주가 쓰시겠다, 하나님께서 너를 필요로 하신다'하실 때 기쁨으로 수용하고 헌신하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선교적 삶이 있습니다.
->선교란? 부르심과 보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공급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시어 하나님 백성 삼으시고 우리를 보내십니다.
->즉, 하나님의 복을 유통시키시고 흘러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부름받고 보냄받는 사람들이 선교적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천국이며, 이것이 영생이고 구원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기쁨과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나의 힘과 지혜를 드리고 나의 건강과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육체와 기도를 사용하시겠다 할 때 나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기쁨으로 순종하고 반응하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약에 예언된 사건입니다.
->(4, 5절) 구약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신다 말씀하시며, 구약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이사야62:11, 스가랴9:9)
->너의 왕이 네게 올텐데 그는 겸손하여 말을 타지 않고 나귀를 탓다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많은 군대와 창, 방패를 앞세워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왕과 장군은 많았으나 나귀 새끼를 타고 오는 왕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지점, 이모습이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표적은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도 '구유에 놓이셨다'는 표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사건도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오는 그분이 구원자, 진정한 왕이라는 표적입니다.
->참된 왕, 구원자는 퍼포먼스가 필요하지 않으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귀로 충분하며 그것이 표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 말씀은 우리의 상식과 관점을 뛰어넘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안에 거해야 합니다.
->신앙은 상식, 당연한 것을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가 생각하고 관례와 익숙한 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마다 시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묻고 진리의 말씀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참된 왕 되시는 독생자가 나귀를 타심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서 나의 생각과 관점, 익숙한 것과 당연한 것을 뛰어넘어 주님의 명령과 주님의 뜻, 진리말씀에 순종해 나아가는 우리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뛰어넘으시기에 진리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3.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원의 천국잔치를 상징합니다.
->(6절) '호산나'의 원어적 의미는 '지금 구원하소서' 입니다.
->고대 근동에서의 구원은 통치권이 바뀌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늘 내삶에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돈과 힘이 구원이 아니라 왕이신 그분이 내삶에 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삶에 참된 호산나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지금 임재하시어 내삶에서 나를 만나주시옵소서' 이것이 구원사건, 천국잔치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호산나, 구원의 천국잔치가 임하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시간 기도할 것은 '주님, 내삶에 오셔서 구원의 천국잔치를 펼쳐주시옵소서, 호산나! 지금 구원하여 주옵소서' 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의 권위를 사용하셔서 징발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어려운 일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고 공급 받아서 나에게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하나님의 생명을 유통하고 펼쳐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고 보내시는 선교적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약의 예언된 사건, 표적입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므로 진리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삶에 참된 호산나가 일어나고 참된 구원의 잔치, 하나님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