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새벽말씀
사무엘하 21:1~14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그 분안에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인간은 선악을 구분한다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선과 악이 구분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먹고나서 선악을 알아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서고 싶었던 아담과 하와의 행동을 성경은 '죄'라고 여기지요.
선과 악을 구분하고 아는 것은 인간이 해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만이 선악을 구분하시며
하나님만이 공의로우십니다.
그 공의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맺으시는 것을 성경은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노아 ,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과 언약을 맺으셨지요.
왜 언약을 맺으십니까?
함께 지키자는 것입니다.
언약은 지켜 행하기 위해 맺은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문제가 있지요.
하나님은 언약을 절대 파기하지 않으시지만 인간은 언약을 지키지 못합니다.
지키지 못하는 쪽은 늘 인간이었습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때 어떤일이 일어나며 어떻게 해결해야합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줍니다.
다윗의 시대에 3년 동안 기근이 발생합니다.
이 당시 기근이면 곡물을 재배할 수 없을뿐더러
곧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 됩니다.
이때 나라의 지도자 다윗은 조치를 취하는데요.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무엇때문인지 하나님께 묻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행동을 잘 보십시요.
나라에 또 삶에 장애물이 발생했을 때
홀로 고민하지않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혼자 끙끙거리지 않습니까? 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내 힘으로 내 지혜로 어떻게 해볼까?
다윗은 그 문제 앞에서 혼자 씨름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현대사회가 상실한 신앙의 유산이
바로 이런 점입니다.
현대사회의 좀 안다. 좀 배웠다. 지혜롭다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다윗의 행동을 어리숙하게 바라봅니다.
'누가 요즘 문제를 그렇게 해결해?
누가 그걸 하나님께 물어?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그걸 왜 하나님께 갖고가서 물어봐?' 어리숙한 행동으로 받이들입니다.
신을 이처럼 몰아 낸 현대사회는 스스로 지혜롭다. 해결할 수 있다 여기며
또 한번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지요.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발현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것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시간낭비로, 허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가치없게 여깁니다.
요즘시대를 보십시요.
특히 코로나 이후 교회안에서도 예배가 여가, 레져, 취미 이런 활동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예배를 지키지 못하면 큰일 나'
예배에 목숨을 걸었지요. 요즘은 예배를 한 두번 빠져도 괜찮아 라는 마음을 갖는것같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필수입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은 예배를
교양활동 쯤으로 여깁니다.
다윗의 삶을 보십시요.
그는 나라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께 간구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삶의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길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기근이 왜 발생한 것입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요.
'내가 이 땅에 3년 동안 기근을 내린것은
사울과 그의 집안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2절에 보시면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며 아모리사람들 중 남은 자 들입니다.
이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브온사람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언약을 맺었었지요.
출애굽이후 가나안 정복 시대의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9장에 나오는 사건인데요.
기브온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이스라엘에게 접근하죠. 우리는 이 땅 거주민이 아니라 멀리서 왔습니다. 우리와 화친을 맺읍시다 라고 하여 이스라엘은 그들과 화친을 맺습니다.
기브온이 속여서 맺게 된것이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이 하나님앞에서의 언약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기브온과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그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땅에 3년 동안 기근이 발생했다고 하나님이 설명해주십니다.
다윗은 이때에 기브오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 되겠느냐 묻고 그들은 왕이시여 은 금에 달린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학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면 그들을 하나님앞에서 목매어 달겠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자손 중 일곱을 택하여 기브온사람들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일곱 자손들과 사울과 요나단의 뼈. 죽은 자들의 뼈를 취하여 장사를 치룹니다.
14절의 말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꼐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오늘본문의 마지막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그 후에야 그 땅의 기근을 끊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잊어도 될만한 것 조금 어겨도 될만한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때 이스라엘땅에 무려 3년 동안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얼마나 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어겼을때에 어떻게 조치하시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신 분입니다.
죄를 '죄'라고 여기시고 또 죄의 댓가를 반드시 물으시는 분입니다.
깨어진것을 그대로두지 않으시며
깨진것을 본래대로 회복시키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언약이 깨진것을 방치하지 않으시며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언약이 깨졌다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책임을 물으시며 언약이 회복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언제나 예배하는 자로
경배하는 자로
순종하는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하루의 삶만 보더라도 우리는 수십번씩 그 언약을 깨뜨립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반역을 저지르는 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죄의 결과는 '사망'이죠. 죽어야 죄가 해결됩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공의로 인한 처벌을 우리에게 가하지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우리 대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위의 예수'가
그 공의에 의한 처벌을 대신 받아내신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진노를 바로
예수에게 쏟으셨으며 죄의 문제를 해소하셨고
그 결과 우리는 살 길을 얻게된것입니다.
여러분 , 깨뜨린것은 우리인데 고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성경은 '은혜'라고 부릅니다.
죽다살아난 경험을 하고나서 '지금 내가 사는 것은 덤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습니다.
지금 사는 것은 덤입니다.
지금사는 것은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로 인하여 사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헌신'이 시작됩니다.
나를 살리신 분을 위해 사는것.
내가 살아있는 것이 누구로인한 것인지를 아는것 그 기억이 회복되는 것을 우리는 '거듭남' 이라고 말합니다.
잊고있었는데 깨닫고 보니 내가 구원받고 살아있는 것이 주님때문이구나'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거듭남'이지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덤이고 제 2의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삶은 근심, 불안이 아니라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기쁨으로 섬길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은혜로,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